하마스는 영악하다.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을 강타하는 테러를 저질렀을 때, 이스라엘이 10배의 보복을 할 줄 알았다. 하마스에 가자지구 주민의 안전은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다. 병원·학교·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로켓포를 쏘아 대기 때문이다. 발사 원점에 이스라엘의 보복 포격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가자지구 주민이 죽거나 다친다는 점을 안다. 그저 주민들은 인간 방패막이에 불과한 셈이다.
하마스가 그러는 이유는 "이스라엘은 악마"란 선전을 외부에 보내기 위해서다. 그 전략은 먹히고 있다. 세계는 하마스가 저지른 잔인한 테러는 점점 잊어버리고, 대신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과 민간인 살상을 떠올린다. 이스라엘군에 하마스가 맞서는 모습을 두고 일부에서는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큰일 날 소리다. 우리 선조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제의 지도층을 공격했을지언정, 무고한 일본인을 살상하는 테러는 하지 않았다. 구조적으로도 다르다.
팔레스타인 땅은 AD 70년 유대인이 로마에 의해 쫓겨난 뒤, 로마 → 비잔틴제국(330~638) → 이슬람 왕조(638~1099) → 십자군(1099~1291) → 이집트 맘루크 왕조(1291~1517) → 오스만투르크 제국(1517~1917) → 영국(1917~1948)으로 지배세력이 바뀌면서 무주공산인 때가 많았다. 팔레스타인이란 국가가 세워진 적도 없다. 그러다가 오스만제국 말기와 영국의 위임통치기에 아랍인과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에 대거 몰려들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분명하게 국민·영토·주권을 가진 국가였으므로, 팔레스타인과는 경우가 다르다.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친척 중 한 명은 이스라엘군에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주민은 태어날 때부터 분노를 안고 산다. "우리 삼촌을 죽이고 어머니를 다치게 한 원수"란 증오심이 가득하다. 하마스는 그런 팔레스타인 주민의 아픔을 잘 활용하고 있다. 하마스는 또 피해자 코스프레를 통해 "아랍 형제들이여, 악마 같은 시온주의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 무얼 하고 있나. 대동단결하여 도와 달라"라고 호소한다. 그간 조용하게 있던 이집트와 요르단마저 "이스라엘이 이러면 안 되지"라며 일부에선 파병이라도 할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과연 아랍국가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요즘 말로 '진심'인 것일까.
큰형님 사라진 아랍연맹
현재 아랍국가들을 대표하는 조직은 아랍연맹이다. 1945년 결성되었고 이집트 카이로에 본부를 두고 있다. 회원국은 22개인데, 팔레스타인은 1976년에 가입했다. 이들 중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이집트·요르단·바레인·아랍에미리트(UAE) 등이다. 거의 모든 아랍과 이슬람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지지한다.
문제는 속내다.
과거 아랍권에서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 등이 집권했을 때는 아랍민족주의 정신으로 "우리가 남이가~"라며 팔레스타인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큰형님 역할을 한 셈이다. 가령 팔레스타인 사람이 자살폭탄 테러로 죽으면 남은 가족을 위해 돈을 지원해주었다. 말로만 아니라 금전과 행동이 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랍권에 그렇게 해줄 큰형님이 없다.
실제 아랍국가들은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파워에 한계를 느끼면서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요즘도 아랍이나 이란에서는 '프리 팔레스타인(Free Palestine·팔레스타인 해방)'이란 구호를 내건 시위가 자주 벌어진다. CNN 카메라 앞에서는 이스라엘 국기도 불태운다. 하지만 그들 중 구체적으로 팔레스타인에 도움을 주겠다는 나라는 드물다. '립서비스'에만 충실하다. 이번 전쟁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아랍연맹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걸프전이 터지면서 곤경에 처했다. 회원국 간의 전쟁이라 심각했다. 많은 국가들이 쿠웨이트 편에 섰고 아랍연맹도 비난 결의를 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리비아는 이라크 측, 예멘은 보류, 요르단은 기권함으로써 아랍연맹의 파벌은 극에 달했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걸프전에 미국 편으로 참전하여 이라크를 공격했다.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는 40만명이 넘는 자국 내 팔레스타인 사람을 강제 추방했다. PLO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동조하면서 사실상 쿠웨이트를 공격했다는 이유다.(200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아바스가 쿠웨이트에 사과하면서 관계가 개선됐다.)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아랍국가의 눈길에는 점차 미소보다는 냉소가 자리 잡았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은 강력한 이슬람제국이던 오스만투르크 시절, 이집트·요르단·시리아·레바논 등에서 띄엄띄엄 몰려든 사람들이 많다. 무슨 국가나 국경이란 개념 없이 그저 소작인 등으로 평범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었다. 19세기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팔레스타인 지방을 여행하면서 묘사했듯, 성지(聖地)란 곳이 너무도 황량했다.
오스만제국이 통치하던 1864년 예루살렘 인구를 조사했던 영국 영사관 기록이 있다. 예루살렘 총인구 1만5000명 가운데 유대인은 8000명, 아랍인 4000명, 기독교인은 2500명으로 다수는 유대인이었다. 시온주의가 발흥하기 이전의 기록이다. 종교도시라는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그 땅에 오래 거주했던 유대인도 꽤 많았다는 점이다. 영국 통치 초기인 1922년 조사를 보면 팔레스타인 땅의 전체 인구는 75만명에 아랍인이 68만명을 차지했다. 다만 예루살렘은 총 6만2578명 중에 유대인 3만3971명(54%), 아랍인 1만3413명(21%), 기독교인 1만4669명(23%)으로 역시 유대인 비율이 가장 높았다.
원래 팔레스타인 지역은 늪지와 사막이 대부분이었다. 땅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시온주의에 따라 1882년부터 유럽과 러시아의 유대인들이 본격 이주하면서다. 처음에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사이좋게 지냈다. 당시 유대계 금융재벌인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대민족기금'을 조성,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팔레스타인 토지 구매에 나섰고 버려진 땅이 금싸라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1944년 중동지역의 비옥한 땅이 에이커(acre)당 110달러에 거래될 때 팔레스타인의 불모지는 무려 1000달러에 거래되었다. 개발 열풍으로 아랍 지주는 상당한 이득을 취했다. 다만 1차대전 당시 팔레스타인 거주 아랍인의 80%는 소작농으로 '기회의 땅'인 팔레스타인을 찾아 이주해왔다. 문제는 소작농 소득이 늘어나면서 봉건 체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자체 갈등도 많았다.
더욱 큰 문제는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 증가하면서 제한된 땅을 놓고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은 1915년 맥마흔선언과 1917년 밸푸어선언을 통해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각각 나라를 세워 줄 듯이 하면서 양측 갈등을 부추겼다. 드디어 유엔은 1947년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하여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를 각각 세우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유대인은 받아들였고 아랍인은 거부했다. 마침내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하자마자 이튿날 아랍 5개 국가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벌어졌다. 예상과 달리 아랍 연합군이 패배했다. 문제는 당시 81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 중에서 65만명이 인근 아랍국으로 피신하고 16만명은 피신하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그 스토리가 딱하다.
1차 중동전 때부터 배신한 아랍국들
당시 아랍국은 전쟁이 임박하자 라디오 방송과 전단지를 통해 "폭탄은 아랍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지 못한다. 안전을 위해 2주간만 집을 떠나 있기를 부탁한다. 당신들은 승리자가 되어 돌아온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팔레스타인 난민은 돌아오지 못한 채 아랍 형제국에서 배척당했고 80% 이상이 여전히 난민촌에 거주하며 유엔의 난민기금으로 연명하게 되었다.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 교수는 "당시 아랍군이 팔레스타인 주민더러 '잠깐만 떠나가 있어. 우리가 이스라엘을 싹 쓸어버릴 테니까'라고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집을 떠났다"라며 "시리아 외교장관은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이 같이 싸워 줄 것을 기대하면서 마을에다 '지금 이스라엘 군대가 우리 딸들을 강간하고 있다'는 가짜방송으로 분노심을 자극하려 했지만 모두 짐을 싸들고 나가 버려 400개 마을이 통째로 비워졌고, 그렇게 나간 숫자가 난민이 되어 70만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아랍 형제국의 말만 믿다가 상당수가 배신당한 셈이다.
이스라엘은 올 9월 현재 총인구의 21%인 206만5000명이 아랍인이다. 예전부터 머물던 아랍인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병역의무 등을 제외하면 유대인과 대등한 법적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아랍계 정당도 있다.
제1차 중동전쟁 당시 아랍국가에 살던 유대인 81만명은 이스라엘로 쫓겨났는데 당연히 이스라엘에서 대부분 흡수했다. 반면
아랍 형제국으로 피신한 팔레스타인 아랍인은 결코 그곳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서울대 사회교육학과 박사인 권재원 작가는 "흔히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랍을 동족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 이집트·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기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스만제국 시절, 똑같이 투르크인들의 지배를 받았지만 아랍인들은 지주(地主), 팔레스타인인들은 소작인(小作人)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을 잘라 유대인 나라를 세운다는 UN 결의안에 아랍 세계가 반발한 까닭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시리아·레바논·이집트·요르단은 각각 제 나름대로 팔레스타인이 자기네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스스로를 아랍 세계의 수장으로 여기며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요르단의 압둘라 1세 국왕이 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는 것을 본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런 일들로 인해 단순한 '아랍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아랍인'이라는 정체 의식이 생겼고, 1964년 카이로에서 아랍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PLO가 결성되었다. 1968년 3대 PLO 의장이 된 야세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은 스스로 해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강하므로 게릴라 활동을 기폭제로 주변 아랍국가를 끌어들여 이스라엘에 대한 전면전을 시도하자"는 메시지를 설파했다.
소극적으로 선회한 맏형 이집트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을 챙겨 주는 가장 큰 '형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이종화 교수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집트는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재임 1956~1970)을 중심으로 아랍 세계의 중심지이자 맏형 역할을 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도 실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은 데다 요즘은 경제까지 어려워지면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거나 난민을 받아들이기에는 곤란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가자주민에게 라파 국경을 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집트에서는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무슬림 형제단'이 2012년에 집권까지 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물론 군부가 이를 타도하고 나섰지만, '무슬림 형제단'은 체제 위협 세력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가자지구를 2006년부터 장악한 하마스가 바로 '무슬림 형제단'을 모체로 하는 조직이다. 이집트는 라파 국경을 개방할 경우 난민을 가장한 하마스 대원이 자국 영토로 들어오는 것을 매우 꺼린다. 반면 이스라엘과는 1979년 평화협정을 맺고 1967년 6일전쟁에서 빼앗겼던 시나이반도를 돌려받는 대신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마스가 시나이반도로 넘어온다면, 이스라엘에 다시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안 그래도 경제마저 어려운데, 상대하기 버거운 이스라엘과 다시 분쟁을 겪는 상황을 이집트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어진 요르단
20세기 초중반 요르단은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아랍권의 맹주였다. 영국과도 각별했다. 요르단군은 이스라엘군과 싸워도 밀리지 않았다. 1946년 이슬람 명문 하심가(家)의 압둘라 1세는 트랜스요르단 하심 왕국의 초대 왕이 되었다. 야심이 많던 압둘라 1세는 유엔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라고 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3대 종교 성지가 있는 동(東)예루살렘에 잔뜩 눈독을 들였고 실제 일부를 병합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의 적대적 경쟁자 노릇을 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압둘라 1세는 1951년 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했다가 21세의 팔레스타인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뒤를 이어 병약한 아들인 탈랄 1세가 잠시 왕위를 맡았다가 1952년부터 손자인 후세인 1세가 군주가 되었다.
요르단은 제1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팔레스타인 난민을 꽤 받아들였고 PLO의 활동도 지원했다. 하지만 PLO는 요르단 영토의 일부를 장악한 채 요르단의 행정력 개입을 거부했다. 1970년 9월 6일 PLO 계열 팔레스타인해방전선(PLPF)은 유럽에서 뉴욕으로 가던 각국의 항공기 4대를 동시 납치,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50㎞ 떨어진 자르카 사막지대에 있는 옛 영국군 도슨 기지에 착륙시켰다. 자르카 사막 일대는 요르단 영토이지만, 후세인 1세 국왕의 묵인 아래 PLPF가 독자적인 군대를 두고 부근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PLPF는 인질을 풀어 주었지만, 납치한 항공기는 잇달아 폭파시켰다. 후세인 1세는 "불쌍해서 받아줬더니 이제 주인 노릇을 하고 국제적으로 나라를 망신시킨다"며 PLO의 축출을 결심했다.
이미 PLO는 은행을 습격하거나 난민에게 과도한 세금을 거두는 등 악명이 높았다. 그런 차에 비행기 폭파 테러까지 벌였으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후세인 1세는 그해 9월 16일 계엄령을 내리고 PLO 진압을 명령했다. 요르단군은 암만에 있는 PLO 부대를 공격했다. PLO 지도부도 요르단 정부를 전복하고 신생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고자 요르단군과 전투를 벌였다. 당시 시리아군은 PLO를 지원했다. 하지만 PLO와 시리아군 모두 요르단군에 패배했고 PLO는 요르단에서 추방됐다. 11일간의 전투에서 PLO는 5000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는데, 이를 두고 '9월의 블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날 이후 팔레스타인에 순순히 자기 영토나 시민권을 내주는 아랍국가는 사라졌다. 지금은 PLO가 많이 부드러워진 반면, 더욱 폭력적인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으니 아랍국가들로서는 더더욱 부담스럽다.
이집트와 요르단 두 나라가 팔레스타인에 냉정해지고 이스라엘과 수교하는 모습을 본 일부 아랍국도 그냥 "이스라엘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2020년 맺어진 아브라함협정으로 UAE와 바레인 등이 해당한다. 아랍권에서 '팔레스타인'은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가 되었다.
신세대 사우디와 멀리서 조종하는 이란
최근 들어 경제력이 이슈가 되면서 아랍 세계의 주도권이 이집트·요르단 쪽에서 걸프 쪽으로 넘어갔다.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UAE·카타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체로 부자인데, "팔레스타인이 불쌍하고 우리도 응원해. 하지만 우리가 왜 돈을 내고 왜 거기 가서 싸워야 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맹주이자, 메카와 메디나를 보유하고 있는 이슬람권의 형님이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는 대립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이란과 경쟁적으로 잘 대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신세대 분위기를 느낀다는 학자들이 많다. 특히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생각부터 젊다. 네옴시티라는 초대형 신도시 프로젝트에 여념이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친하고, IT에도 관심이 많아 각국 경영자와 자주 만난다. 그에게 고리타분한 이념 논쟁은 마음을 움직이는 이슈가 아니다. 이스라엘과 수교하려던 것도 신세대적인 발상이다. 그는 지난 9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매일매일 이스라엘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말에 팔레스타인은 실망하고 이란은 계속 틈을 파고들었다. 하마스의 경우 처음부터 이란과 친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아랍의 봄'이 시작되고 시리아 내전이 터지면서, 이란은 하마스에 대한 자금·무기 지원을 끊었다. 이란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원했는데, 하마스는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같은 수니파지만 이란과 결탁했던 하마스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다. 카타르가 그나마 하마스를 도왔으나 규모는 적었다. 2006년부터 가자지구를 통치하게 된 하마스는 결국 다시 이란에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이란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었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 테러는 이란의 배후 지시라고 모두 의심하고 있다.
[주간조선:최홍섭 객원기자]
(기도)
실리 위주로 돌아선 아랍 국가들이 이번 기회에 하마스와 완전한 선긋기에 나서게 하옵소서. 민간인을 방패삼아서 이슬람권에 분노를 폭증시키는 하마스의 흑색선전이 통하지 않게 하옵소서. 국제사회 역시 하마스가 일으키는 흑색선전에 놀아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이 하루속히 종전되게 하소서!
*어린이와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삼은 하마스의 전략에 아랍권은 속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더 이상 중동국가로 확전되지 못하도록 주님 방법으로 막아 주소서!
반드시 다시 오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